소피 칼 [Sophie Calle]
나는 쏘피칼이 참 좋다. 나는 사람을 볼때도 솔직하고 투명한 사람을 참 좋아하는데 쏘피칼의 작업은 그렇게 투명하고 솔직해서 좋다. 사람들은 보통 소피칼에 대해서 이야기 할때 최고의 거짓말쟁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녀의 작업은 진실과 허구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작업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모호하며 심지어는 자신의 몸과 삶 전체가 허구를 만들어 내는 작품의 대상이며 그녀 자신도 그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소피칼을 '솔직'하다고 표현하는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아이러니하게 들릴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내게는 소피칼의 작업이 절절한 진실로서 느껴지는 감정이 있고 그렇게 믿어버리고 싶다. 아니, 어찌보면 '진실'이라는 말보다 '진짜'라는 말의 뉘앙스가 더 정확할것도 같다. 소피칼의 작품에서는 간절한 냄새가 난다. 슬프다기보다는 절절하고 진실되다. 소피칼의 작업은 지극히 사적이면서도 공적이다.
소피칼은 증거(사진이나 오브제)와 텍스트가 결합된 작업을 한다.
나는 원래 그림에 텍스트가 다른 조형언어로서가 아닌 말 그대로 '텍스트'의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언어라는 것은 사람을 편하게도 해주지만 반대로 피곤하게 하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설명적이고 직접적인것이 싫었고 언어라는것은 제 스스로의 단정적인 틀에 갖혀 느낄수 있는 것의 한계에 부딪히게 만들고 그것은 곧 가능성을 잃게 만든다고 믿었다. 곧 그것은 내가 생각하는 '미술'이라는 것에 반하는 요소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소피칼의 작업에서 텍스트는 제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단순한 언어의 역할을 벗어나 작품의 한 요소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하고있다.
인쇄술 이전의 문화가 높은 문맹률에 기인한 이미지의 문화였다면, 현대는 이미지의 손쉬운 조작과 생산에 의한 이미지 범람의 시대이다.
이미지는 이제 진리의 도구로 여겨지던 문자의 권좌를 넘보고있다. 문자와 이미지의 이러한 관계는 예술의 영역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기술에 의한 이미지의 복제는 문자와 이미지의 관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만들었다.
문자를 통해 진리를 사유하고 표현하던 인문학은 이제 문자를 통해 이미지에 대해 사유하게 된다.
-진실된이야기(Sophie Calle) 심은진 논문 중-
2007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Take care of yourself'
소피칼의 작업이 시작된것은 남자친구로부터 받은 이별 통보 이메일.
소피칼은 그 메일을 복사하여 107명의 다양한 직업을 가진 여성 지인들에게 보내, 그것을 꼼꼼히 검토해줄것을 부탁한다.
유명 여배우부터 동료 아티스트에까지 이르는 여성들에게 이 편지에 대한 응답 또 한 요청하는데,
그 결과 한 친구는 그 편지를 자신의 애완동물에게 던져줘 이빨로 씹어버리게 한가 하면, 문법 교사인 한 친구는 그의 메일의 문법을 교정해주기도했다.
그들은 그 편지를 자세히 읽어보고, 저마다의 방식대로 분석하고, 해체시켜 버렸다.
또한 소피칼은 정신 분석학자, 성 전문의, 크로스워드 퍼즐 전문가, 사립탐정, 교수, 광대, 배우, 가수 등에게 그 한심한 남자의 편지를 보내 철저히 검토해 줄것을 요청하였다.
편지를 전해받은 사람들을 모두 글 한자, 한자, 구절 구절을 꼼꼼히 검토하였다.
소피칼은 무질서의 상태에 질서를 부여하고자 한다.
밑의 글은 편지 전문.
From g.
To. Sophie calle
Sophie,
I have been meaning to write and reply to your last email for a while. At the same time, I thought it would be better to talk to you and tell you what I have to say out loud. Still, at least it will be written.
As you have noticed, I have not been quite right recently, as if I no longer recognized myself in my own existence. A terrible feeling of anxiety, which I cannot really fight, other than keeping on going to try and overtake it, as I have always done. When we met, you laid down one condition: not to become the “fourth.” I stood by that promise: it has been months now since I have seen the “others,” because I obviously could find no way of seeing them without making you one of them.
I thought that would be enough, I thought that loving you and your love would be enough so that this anxiety-which constantly drives me to look further afield and which means that I will never feel quiet and at rest or probably even just happy or “generous’-would be calmed when I was with you, with the certainty that the love you have for me was the best for me, the best I have ever had, you know that. I thought that my writing would be a remedy, that my “disquiet” would dissolve in to it so that I could find you. But no. in fact it even became worse. I cannot even tell you the sort of state I feel I am in. so I started calling the “ others” again this week.
And I know what that means to me and the cycle it will drag me into.
I have never lied to you and I do not intend to start lying now.
There was another rule that you laid down at the beginning of our affair: the day she stopped being lovers you would no longer be able to envisage seeing me. You know this constraint can only ever strike me as disastrous and unjust (when you still see B. and R…) and understandable (obviously…); so I can never become your friend.
But now you can gauge how significant my decision is from the fact that I am prepared to bend to your will, even though here are so many things-not seeing you or talking to you or catching the way you look at people and things, and your gentleness towards me- that I will miss terrible. Whatever happens, remember that I will always love you in the same way, my own way, that I have ever since I first met you: that it will carry on within me and, I am sure, will never die.
But it would be the worst kind of masquerade to prolong a situation now when , you know as well as I do, it has become irreparable by the standards of the very love I have for you and you have for me, a love which is now forcing me to be so frank with you, as final proof of what happened between us and will always be unique.
I would have liked things to have turned out differently.
Take care of yourself.
G.
소피칼이 이름을 알린 계기가 된 파리비엔날레에 출품한 '잠자는 사람들'
27살에 자신의 나이만큼은 27명의 사람들에게 나이,성별,직업에 무관하게 자신의 침대에서 하루동안 잠을 자 줄것을 요청한다.
어떤 이는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고, 어떤이는 자신의 침대인양 잠에 빠지고.. 그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현재 리움에서 전시를 하고있는 'memories of the future'에 다녀왔다. 한쪽에 파티션으로 나뉘어있고 입구에 19금 표시가 되어있길래 뭘까 했더니 소피칼의 작품들이었다. 이번 전시에 출품한 <남편husband>은 소피 칼과 그녀의 남편의 만남과 헤어짐에 대한 기억을 일련의 사진과 텍스트로 담은 작품과 실제 미국 횡단 여정을 담은 영화 <Double-Blind/No Sex Last Night>이 상영되고 있었다. 사진과 텍스트 작업은 워낙 유명한거라 몇번 봤던 것들이었지만 영화는 제목만 들어보고 접해볼 기회가 없었었는데 보게되어서 참 다행이었다. 집에와서 혹시나하고 유투브에서 찾아봤더니 일부가 올라온것이 있어서 함께 올려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