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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강 주 희 2011. 8. 8. 01:59


-'미치광이는 스스로 현자라 생각하고, 현자는 자신이 그저 미치광이일 뿐이라고 인정한다. 누가 이런말을 했더라? 셰익스피어? 예수? 부처?'


-'방금 전에 한 행동이 정말로 나와 일리나의 미래를 바꾸어 놓았을까? 원래 전하려던 말 대신 다른 말을 했다고 과연 정해진 운명이 바뀔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떠오른 생각은 그녀가 사랑하는 엘리엇이었다. 둘이 함께 늙어 가리라 믿었는데, 이렇게 서른도 되지 않아 먼저 죽는다는 것이 서글펐다. '인간이 운명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운명이 결정하는 것을 따라야 하는 존재가 바로 인간 아니던가? 산다는게 다 그런지도 모르지.' 죽음의 물결이 두려움에 떨며 어둠 속에 갇힌 그녀의 발못을 잡고 있었다. 건너편 세계로 기우뚱 넘어가기 진전, 그녀에게 간절한 후회로 남는 단 한가지 생각이 있었다. 엘리엇과 싸우며 헤어졌고, 그의 뇌리에 영원히 간직될 자신에 대한 마지막 이미지가 회한과 원망으로 얼룩졌다는 것이었다.


-"무슨 일 있어?" "이제 연기는 더 이상 못하겠어." "연기라니?" "우리 둘 사이에 문제가 생겼어." "지금 무슨 얘길 하는 거야?" "사실은 나에게 다른 여자가 있어." 순식간에 터져 나온 말이었다. 10년간 가꿔온 사랑을 무너뜨리는데 불과 몇 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녀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의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아직은 그저 고약한 농담을 들었거나 잠이 덜 깨 헛소리를 들었거니 생각하는 듯했다.


-그 순간 그녀는 아무 말도 들을 수 없게 귀를 틀어막아버리고 싶었다. 그녀는 아직 그의 말이 그저 바람을 피운 사실을 고백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에 한정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엘리엇은 잔인하게도 상처받은 가슴에 못을 받았다. 그녀는 뭐라 대답하고 싶었지만 너무나 괴로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저 무기력하게 양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의 자취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그가 내뱉는 말이 그녀의 가슴 한가운데 비수처럼 내리꽂혀 이 상태로는 도저히 버틸수 없을 것 같았다. 그녀는 자존심과 체면 따위는 모두 접어두고 격정적으로 고백했다. "엘리엇, 내게는 당신이 전부야. 당신은 내 연인이고, 내 친구이고, 내 가족이야." 그녀가 다가가 그의 품에 안기려하자 그가 뒷걸음질을 쳤다. 그녀의 눈길이 엘리엇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더는 아무말도 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그는 안간힘을 다해 한 마디 더 내뱉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 일리나."